어릴 적 글쓰기는 독후감 숙제일 때만 하는 일이었다. 나에게 숙제는 꼭 해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이 다짐이 부메랑이 되어 나를 옥좨온다. 결국 글 쓰는 일은 나를 옥죄는 일이었다. 책상에 앉아 글 쓸 생각을 하면 입에서부터 신호가 온다. 입안에 혀가 굳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된다. 글 쓰는 게 두려웠다. 두려움이 아이디어를 안 떠오르게 했다. 아이디어가 없으니 글쓰기가 힘들어졌다. 악순환이었다. 여태까지 글쓰기를 숙제라서 억지로 했다. 분량 채울 생각에 막막하기만 했다.
학생 시절 글쓰기 숙제를 항상 피했다. 아이러니하게 회사원이 되니 글을 써야 하는 일이는 계속 생겼다. 업무 이메일, 업무 보고서, 기술 활용 팁, 과제 기획, 과제 진행 보고서 등을 계속 써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업무 글은 양식이 있었다. 틀에 내용을 맞추니 쓸 수 있었다. 이렇게 10년 넘게 하니 글에 형식이 있으면 마음에 두려움이 줄어들었다. 입안의 답답함과 옥죄는 기분도 사라졌다.
홀가분해지니 용기가 생겼다. 마침 알게 된 씽큐베이션 모임에 참여했다. 처음엔 형식이 없어 힘들었지만 팀원들과 함께 하니 완수할 수 있었다. 모임을 지속하면 혼자서도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씽큐베이션 1기, 2기를 하고 이어서 한 달 글쓰기 모임까지 했다. 거의 반년 넘게 글을 쓰니 두려움이 없어진 줄 알았다. 그땐 까진 그랬다.
2020년에 들어서 홀로서기에 도전했다. 타인이 준 숙제가 아니라 나만의 주제로 글을 쓰려 했다. 막상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으니 다시 두려워졌다. 다른 할 일을 핑계 대며 글쓰기를 미뤘다.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일 년 내내 쓰지 않았다. 다시 글쓰기가 두려워졌다.
하지만 내 안에는 글 쓰고 싶은 욕망이 숨어있다.
글로 나를 표현하고 싶다.
두려움도 이기고 싶다.
머릿속 이야기를 종이에 담고 싶다.
다시 도전하자. 유시민, 강원국,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일단 의자에 앉자. 일단 아무거나 쓰자. 잘 쓰려고 하지 말자. 이건 숙제가 아니다. 내가 만든 족쇄를 벗어던지자. 스스로 하기 어려우면 도움을 받자. 부끄러운 게 아니다. 무엇이 나를 위한 건지 길게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