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소리 말고도 기억을 확 불러일으키는 것이 있다. 바로 냄새다. 저 멀리서 은은하게 풍기다가 어느새 다가와 내 속에 쏙 들어온다. 냄새는 아직까지 인위적으로 만들기 어려운 것 중에 하나다. 다른 거에 비해 자연적이고 원시적으로 많이 남아 있다.
음식, 꽃, 향수 같이 여러 냄새가 있지만 내 기억을 잡아끄는 건 공기 냄새다.

동이 트기 전 어스름한 하늘 밑 뿌연 안개 속에 날 깨우는 냄새가 있다. 새파랗고 차가우며 쓸쓸한 냄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르바이트 가게에 가면서 맡던 그 냄새다. 급하게 씻어 덜 마른 머리에 차가운 새벽 공기가 접촉하면서 풍기던 하얀 물 냄새는 항상 피곤한 나는 깨워줬었다.
이 새벽 공기는 스무살 내가 일년 내내 아침마다 맡았던 거다. 갑자기 어려워진 집안 형편에 끝이 보이지 않았던 시절에 반복되는 하루가 계속되어 지친 나를 아침마다 깨워줬던 그 공기다.
직장에 다니고 결혼하고 아이가 생긴 지금 가끔씩 새벽에 그 공기 냄새를 만날 때가 있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피곤한 스무 살 시절이 떠오르지만 지금은 그때처럼 막막하진 않다. 코끝이 아련해지는 새벽 공기로 옛 추억이 떠오르지만 이젠 그때와 다르다.
그땐 매번 그랬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이젠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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