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아빠! 일루 와봐. 대박 엄청 난데. 눈이 엄청 쌓였어!"
재택근무로 작은방에서 저녁 일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베란다에서 소리쳤다. 이번 겨울엔 눈이 거의 안와 쌓인 눈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는데 새해를 맞아 폭설이 내렸다. 코로나로 한 해 동안 답답했는데 흰 눈이 빼곡히 내리니 속이 뻥 뚫렸다.
아내는 장갑, 목도리, 귀도리를 챙기고 아이는 스키 잠바를 입고 신발장에서 부츠를 꺼내 신다. 일이 대수랴. 나도 키보드를 제쳐두고 스키 장갑, 목도리, 패딩 잠바를 입고 현관을 나섰다.
1층 출입구에 나가니 벌써 흰 눈이 발목까지 쌓였다. 아이는 이리저리 좌우를 돌아다니며 뛰기 시작했고 아내는 눈을 뭉쳐 눈싸움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뿔싸 아내와 아이는 한 편이 되어 나를 공격했다. 얼굴 정면에 차가운 눈덩이를 맞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왼쪽 골목으로 돌아 아무도 앉지 않은 벤치에 쌓인 눈으로 총알을 준비했다.
양손을 벌려서 가운데로 눈을 몰아 뿌드득 뿌드득 동그랗게 뭉친다. 벤치 등받이에 쌓인 눈을 다시 중앙으로 모아 으드득으드득 당구공 만하게 만들었다.
기선 제압을 당했으니 반격할 땐 쉴틈이 없어야 한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 마스크가 덮인 입으로 가뿐 숨을 내쉬며 눈덩어리를 8개 장전했다. 이제 시작이다.
4개를 왼팔에 올려 두고 모퉁이를 돌아한 개씩 휙 던진다. 눈 앞에 보인 아내에게 4발을 연속으로 맞추고 다시 뒤로 빠져서 남은 4개를 장전하고 돌아간다. 자식도 봐줄 순 없다. 왼팔에 다시 올린 눈덩어리를 휙 휙 던져 맞춘다. 기세는 역전되었고 내가 이겼다.
깊은 한숨이 마스크를 뚫고 안경에 성애를 끼우게 했다. 난데없이 코에 차가운 아픔이 느껴졌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 뒤로 빠졌는데 희미한 빛 덩어리가 보이더니 다시 얼굴을 덮쳤다.
어느새 아이와 아내가 다가와 반격을 했다.
수적으로 밀리니 이길 제간이 없다. 이번 판은 졌지만 다음엔 이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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