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를 읽고 서평을 쓰려니 죽음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 된다. 책을 읽고 나서도 아직 난 죽음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다. 나에게도 죽음은 다가오지만 아직은 생각하기 싫다. 아주 먼 미래에 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아니 믿고 싶다. 나의 죽음, 아내의 죽음, 아이의 죽음, 부모님의 죽음이 모두 필연적인 것은 알지만 생각하면 슬프고 고통스럽다. 특히 내 아이의 죽음을 내가 봐야 한다고 상상하면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하지만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래서 가능한 죽음을 인정해보려 한다. 아직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죽음이라는 단어보단 마지막, 이별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려 한다.
저항
최근 몇 년 사이에 친한 친구들의 부모님, 친한 형의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조문을 했었다. 20대에는 부친상, 모친상은 흔히 않아서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외면할 수 없다. 아버지가 금년 초 술을 과하게 드시다가 복수에 물이 차는 일이 생겼다. 간에 무리가 간 것이다. 이번이 두 번째이다. 10년 전에 사업이 망했을 때 매일 술만 드시다가 복수에 물이 차서 치료했었다. 이번에 간 병원에서 의사가 다음에 또 무리하시면 다음은 어려울 것이라 했다. 치료는 잘 마쳤고 요즘에는 아버지가 술을 자제하신다. 하지만 아버지 몸이 예전 같지 않다. 감기에 걸리면 낫는데 일주일이 넘게 걸린다. 음식을 잘못 드시면 몸에 반점이 생기고 없어지는데도 몇 주가 걸린다. 아버지도 이제 노인이 되신 것이다. 한국인 평균수명이 82세이고 아버지는 올해 70세이시니 10년 남짓 남으셨다. 더 오래 사시길 바라지만 마지막이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엄마는 매일 수영을 해서 정정하시만 엄마의 마지막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내가 안 보려고 한다고 안 오는 게 아닌 것이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존재할 때는 죽음이 오지 않았고 죽음이 왔을 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50p
할아버지
책을 보면서 내가 왜 이리 마지막을 두려워했나 하고 돌아보니 어릴 적 적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시절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10살쯤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할아버지는 치매를 앓으셨고 그 뒷바라지를 엄마가 모두 하셨다. 거의 1년 동안 할아버지를 모셨는데 그걸 엄마가 모두 하셨다. 치매가 있는 어르신을 모셔야 했던 사람들은 뒷바라지가 얼마나 힘든지 알 것이다. 성격은 더 완고해지시고 주위 가족 얼굴도 잊어버려 누구냐고 물어보신다. 대소변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시고 가끔은 방벽에 묻히기도 하셨다. 내게 가장 무서웠던 일은 새벽에 집을 나가시려고 나오시는 거였다. 아버지는 매번 막을 수가 없어 주무시게 되면 방문을 끈으로 묶어서 열리지 않게 하셨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새벽에 방문을 부실 듯이 두드리셨고 그 소리에 무서워 아버지 품으로 들어가 잠을 잔적이 많았다. 나에게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은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자신도 무너지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죽어가는 과정을 외면하고 있었다.
집에서 모신다고?
우리는 일반적으로 언제 죽을지 선택할 수 없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어디서 죽을지는 선택하려고 한다.
. . .
임종을 앞둔 할아버지가 사랑하는 가족에게 둘러싸인 멋진 그림이 다시 떠오른다. 하지만 집에서 모시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잘해야 본전인 경우가 많다.
-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137p
10살이었던 나도 엄마가 힘들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호스피스 시설이 많지 않았고 비용도 비쌌다. 그리고 부모님을 남의 손에 모신다는 게 불효였다. 내가 이상하게 생각했던 점은 할아버지가 드시는 음식이었다. 이가 다 빠지셔서 음식을 씹기가 힘드니 어머니가 매번 죽을 쑤어서 드렸다. 할아버지는 매번 "애미야 간장이랑 참기름을 가져와라" 하셨고, 죽에 간장과 참기름을 엄청 넣어서 드셨다. 그것도 매 끼니마다 그렇게 드셨다. 가끔은 상을 엎으셔서 아버지가 온 방을 청소하고 이불과 요를 다시 바꿔야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여행도 못 가고 주말엔 가끔씩 아버지랑 외출을 했었다. 할아버지에겐 죄송하지만 가족 모두가 매여 있었다.
할아버지를 모신 것처럼 내가 부모님을 모실 수 있을까? 그건 못하겠다. 정말 부모님에게 죄송하지만 하기 힘들다. 엄마가 이런 내 마음을 아시는지 죽을 때 되면 자기는 요양원이나 실버타운에 가실 거라며 우리 애들한테는 노인 돌보는 일을 맡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때 나는 여동생과 함께 돈을 모아서 좋은 요양원에 보내드리고 대신 자주 찾아뵙겠다고 했다. 혹시 누군가가 이런 나를 욕해도 좋다. 하지만 내가 덜 힘들게 살면서 부모님과 즐겁게 지내고 싶다. 같이 살면서 의식주에 대한 고통을 받고 아내와 아이까지 그걸 짊어지면서 속으로 언제 돌아가시나 하는 마음을 갖고 싶진 않다.
'좋은' 죽음을 어떻게 정의하든 그들의 죽음은 대부분 좋은 죽음이라 자신할 수 있다. 많은 이가 노인 보호시설과 실버타운, 요양원 등 노인과 환자를 염두에 두고 지어진 시설에서 좋은 죽음을 맞이한다. 이런 시설에서는 숙련된 간병인이 24시간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141p
마지막 며칠
할아버지를 회상하고 나니 자연스레 부모님의 마지막을 생각하게 된다. 지난 주말 부모님 댁에 책을 가져갔을 때 엄마가 책 제목과 부제를 보고 바로 첫 장을 읽으셨다. 책을 거의 읽지 않는 분이지만 이번 책은 다르게 보였나 보다. 책을 보는 모습은 좋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대해 생각을 하신다는 게 느껴지니 슬픈 기분이 되었다.
책을 보신 후 엄마가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 주셨다. 할아버지에게 치매 증상이 생긴 후 1년간 간호를 했다. 할아버지는 종일 방에 누워 계셨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두 번 엄마가 샤워를 시키셨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샤워를 시키는 도중이었다. 할아버지가 말짱한 목소리로 엄마에게 이야기하시는 거였다.
"애미야, 요번이 마지막이여. 요건 이제 끝이다. 수고 많았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깜짝 놀랐지만 조용히 샤워를 마쳤다고 했다. 그리고 이틀 뒤 할아버지는 작별을 고하셨다. 엄마는 마지막을 예상했었고 담담히 정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할아버지 방을 정리하고 병원에 모신 뒤 염습할 때 일이다. 오른손을 꽉 쥐고 계셨는데 아버지도 못 풀고 큰아버지도 못 풀어 어떻게 할지 난감해하셨다. 그 얘기를 듣고 엄마가 들어가 할아버지에게 "아버지, 규진이 애미에요."하시니 쥔 손을 풀으셨고 반지가 하나 있었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도 치매로 정신이 혼란스러우셨지만 엄마가 모셨다는 걸 알고 그걸 고마워하셨던 거 같다. 그렇게 다음 장례는 치려 줬다. 내가 기억하기에 엄마는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았다. 발인하고 산소에 가서 하관 할 때 그때 하염없이 우셨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임종 환자를 돌봐온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자주 목격하는데, 신체적 원인보다는 돌발적인 감정 표현으로 본다. 절박한 순간에 격한 감정을, 마지막 남은 생명의 불꽃을 일시에 발산하는 것이다.
. . .
환자가 죽음에 임박했을 때 갑자기 생기가 돌고 정신이 또렷해지는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한다. 그런 상태를 '임종 시의 명석함'이라고 묘사한다.
-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192p~193p
애도와 기쁨
금년 초 아버지가 병원에 계실 때 초췌해진 모습에서 예전 할아버지 모습이 보였다. 예전 할아버지 흑백사진을 보면 내 얼굴에서도 할아버지 모습이 있었다. 할아버지와 좋았던 기억이 별로 없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글로 할아버지의 일을 풀어내고 나니 예전에 싫었던 할아버지와의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다시 품을 수 있게 됐다. 30년 동안 철없던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다. 매년 명절 때 가던 성묘할 때는 아무 감흥이 없었는데 이제는 할아버지의 명복을 빌어야겠다.
할아버지 좋은 세상에 잘 계시죠.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5221169
출처 모음
[1] 영화 - 그대를 사랑합니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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