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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글쓰기

잊혀진 아이 - 03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종은은 퇴근하고 돌아온 덕윤에게 물었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덕윤은 긴장하며 거실 소파에 앉았다.

결혼 한 지 2년 차 종은은 이 정도면 충분히 신혼을 즐겼다고 생각했다.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 두 분도 지난 명절부터 손주가 보고 싶다는 눈치를 주셨다. 말 많은 주변 친구들도 서른하나인 그녀가 노산에 가까워졌으니 조심하라고 충고했다.

그녀는 신혼 동안 맞벌이하면서 야근하고 야식하는 생활습관으로 임신을 준비하기 전 몸 상태를 점검하고 싶었다. 마침 회사 복지로 제공하는 건강검진이 다가왔다.

"자기야, 우리 아이 가질 준비를 해야 할 거 같아. 맨날 야식하고 잠도 불규칙하게 자니까 몸이 엉망이야. 이번에 회사에서 해주는 건강검진받고 그 뒤에 산부인과 가서 검사도 받아보자. 산부인과에서 남자도 검사해 준대. 우리 둘 다 받자."

"나도 검사한다고? 음... 둘 다 확실하게 검사하는 게 좋겠네. 알았어"

종은이 건강검진을 하고 몇 주 뒤 종양이 보인다며 재검사하라고 전화가 왔다. 재검을 하고도 종양 판정이 나와 큰 병원에 가서 조직 검사를 했다. 친정 엄마가 작년에 유방암 수술을 받았기에 종은은 왠지 불안했다.

조직 검사 결과 갑상선암이었다. 크기가 커서 갑상선 제거 수술이 필요하다며 수술 날짜까지 예약하고 나왔다. 택시 타고 집에 들어가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아이를 갖기는커녕 병만 얻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는 예전 그 일 때문에 더 괴로웠다.

덕윤도 결과가 나오는 날이라 반차를 내고 일찍 퇴근했다. 집에 가니 종은은 거실 바닥에서 울고 있었다.

"뭐야. 결과가 어떻게 나왔어?"

"....."

"울지만 말고 뭔지 알려줘"

"... 갑상선암이래... 종양 크기가 커서 수술 해야 한대... 우리 어떻게 해..."

"회사 동료들 중에도 갑상선암으로 치료한 사람있더라구. 괜찮을꺼야. 우리 좀 더 알아보자."

"예전 그 일 때문에 우리 벌받는 거 아닐까?"

종은은 자꾸 결혼 전에 있었던 그 일이 떠올랐다. 연애시절 왜목마을로 여행 가서 생긴 그 일이었다.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자기야. 그 일 때문에 우리 더 열심히 잘 살기로 했잖아."

덕윤은 종은이 자책하는 게 보기 힘들었다. 그 일은 여행지에서 실수로 피임을 안 하고 관계를 가져서 아이가 생긴 거였다. 결혼 얘기가 나오기도 전이라 빨리 수습을 하려 했다. 여러 산부인과에 연락해 아이를 지웠었다.

"자기야. 그 아이도 우리가 잘 살기를 원할 거야. 우리 수술 잘 받고 몸조리 잘 해서 임신 준비도 하자."

울다 지쳐서 그녀는 잠이 들었고 덕윤은 수술 전에 필요한 짐 정리를 했다.


종은은 갑상선 제거 수술을 받았고 방사선 치료까지 받아 완치 판정을 받았다. 몸에 남은 방사선 때문에 다음 1년 동안 아이를 가질수 없었다. 대신 그 시간 동안 충분히 몸 관리를 했다. 덕윤도 담배, 술을 끊고 함께 몸 관리를 했다.

처음 계획보다 3년 지나고 그들은 아이를 가졌다. 임신 도중 여러 일이 있었지만 잘 견뎌냈고 건강한 여자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처음 보던 부부는 예전 아이가 떠올라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들에겐 아이가 용서이고 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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