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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1학년 3학반이지? 사립 초등학교를 다녔다. 한 학년에 4개 반만 있어 6년 동안 4개 반 친구들과 함께 지냈다. 거의 모든 친구들을 알고 있었고 학교와 동네에 친구들이 수두록 했다. 이 당시에는 초등학교 친구들이 나에게 전부였다. 중학교를 8 학군으로 보내고 싶었던 부모님은 미리 집을 준비하셨고 6학년 겨울 방학에 이사를 했다. 서울 강북에서만 살다가 한강을 건넜다. 청담동에서 살게 되었다. 집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 중학교도 마찬가지로 나 혼자였다. 외롭고 떨리던 마음으로 등교를 하고 정해진 내 자리에 앉았다. 반 친구들 사이에 끼어들 수 없었다. 그전에는 어디든 아는 친구가 있었고 어느 장소나 내가 가봤던 곳이었다. 낯선 장소에 놓여 본 적이 없던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키도 작아서 앞자리에 앉아 칠판만..
예전 같지 않은 나 깨똑! "규진 잘 사냐" > "어 오랜만이네. 난 잘 지내, 어때?" "그냥 그렇지 뭐" "근데 너 지난 모임 때 왜 안 왔어?" "다들 너 보기 힘들다고 뭐하냐고 묻더라" > "아.. 그때 일이 있었어. 미안" > "공부하고 집안일하고 애보고 하니까 시간이 없네." > "주말엔 양가 부모님들에게도 가야 하니까 시간이 더 없어" "열심히 사는 구만" "근데 그러다 번 아웃된다. 가끔씩 우리 만나서 머리 식혀" "다음 모임엔 꼭 나와라" > "알았어. 담엔 갈게" "그려" 3년 전 오랜 회사 생활에 무기력해져 육아휴직을 했다. 휴직하는 동안 무엇할지 고민하고 아내와 긴 상의를 했다. 남에게 휘둘리는 삶이 아닌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회사보단 나를 위해 공부하고 언제든 그만둬도 다른 직장..
그 때 그 일 연말이 되기 전 친가에 놀러 갔다. 늦게 까지 놀던 아이를 재우러 아내가 들어가고 난 샤워를 했다. 샤워를 마치고 거실에서 머리를 말리던 나를 보며 엄마가 대뜸 그날 이야기를 했다. 그 날의 경험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신기하고 무섭다. 그 날은 내가 국민학교 5학년 여름 방학하기 한 달 전이였다. "여보, 내가 어제 안 좋은 꿈을 꿨어요. 오늘 하루 조심해요. 알았죠?" "무슨 꿈인데?" "꿈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왔어요. 테이블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내가 염을 하고 있었어요. 오른발을 잡았는데 갑자기 발이 땅에 떨어졌고 발을 다시 올리고 나니 깼어요." "음... 알았어. 당신도 조심하고. 나 갔다 올게" 엄마는 가끔 예지몽 꾸고 가족들의 안 좋은 일을 맞추곤 했다. 잘 아는 큰 스님과 무당들이 엄마가..
슬픈 데님 평온한 비단 "프란체스카는 눈을 감고서 어떤 특별한 감촉을 느낄 때마다 생동감을 경험한다. 데님은 극단적인 슬픔, 비단은 평화와 평온함, 오렌지 껍질은 충격, 왁스는 당황함 등이다." - 명령하는 뇌, 착각하는 뇌 프란체스카는 공감각의 소유자이다. 촉각과 생동감이 동시에 일어난다. 다른 공감각 소유자는 숫자를 보면서 색깔을 보기도 한다. 실제 이들은 하나의 자극이 뇌의 두 영역을 동시에 활성화시킨다. 그들은 정말로 두 가지를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예술가나 여러 분야의 대가들 중에서 이런 공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학자들이 발견했다. 남들과 보다 더 느껴서 입체적으로 생각하면서 더 나은 성과를 보이는게 아닐까 한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의 초능력 같기도 하다. 나도 두 가지 감각이 불어 일으켜진다면 어떨까? '..
현실과 이상 차이 어제 폭설이 내렸다. 7~8년 전 폭설로 회사에서 지각 예외를 줬던 그날처럼 거리에 눈이 쌓였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출근길이라 택시를 탈까 고민하다가 그냥 차키를 들고 차에 탔다. 시동을 켜고 지하에서 올라가 주차장 입구에 나섰다. 입구 사거리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아파트 단지들 사이 골목길은 치우지 못해 눈이 쌓은 그대로였다. 서행하면서 골목 진입을 위해 핸들을 왼쪽으로 돌렸다. 차는 좌측으로 5도, 10도, 15도, 30도, 45도, 45도, 45도. 잠시 밀렸다. 기어를 저속으로 내리니 다행이 서서히 회전하여 골목길에 무사히 진입했다. 휴~ 한숨 돌리고 출근길에 올라탔다. 평소보다 시간이 2배 걸려 회사 주차장 입구에 도착했다. 나처럼 차를 가져온 사람들이 꽤 있었는지 지하 주차장에 입구에 눈 ..
최선의 방어는 공격? "아빠! 아빠! 일루 와봐. 대박 엄청 난데. 눈이 엄청 쌓였어!" 재택근무로 작은방에서 저녁 일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베란다에서 소리쳤다. 이번 겨울엔 눈이 거의 안와 쌓인 눈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는데 새해를 맞아 폭설이 내렸다. 코로나로 한 해 동안 답답했는데 흰 눈이 빼곡히 내리니 속이 뻥 뚫렸다. 아내는 장갑, 목도리, 귀도리를 챙기고 아이는 스키 잠바를 입고 신발장에서 부츠를 꺼내 신다. 일이 대수랴. 나도 키보드를 제쳐두고 스키 장갑, 목도리, 패딩 잠바를 입고 현관을 나섰다. 1층 출입구에 나가니 벌써 흰 눈이 발목까지 쌓였다. 아이는 이리저리 좌우를 돌아다니며 뛰기 시작했고 아내는 눈을 뭉쳐 눈싸움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뿔싸 아내와 아이는 한 편이 되어 나를 공격했다. 얼굴 정면에 차가..
떡 하나에 10원 삶은 계란은 100원 딩동댕동 땡땡땡 수업 끝.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하루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기 전 친구와 난 거의 매일 학교 근처 포장마차에 간다. 오늘은 엄마한테 받은 용돈으로 내가 쏘는 날이다. 포장마차 입구로 들어가 으스대며 말한다. "아줌마 떡볶이 500원어치랑 계란 두 개 주세요." 떡볶이 떡은 하나에 10원, 삶은 계란은 하나에 100원이다. 용돈 천 원을 아껴서 700원으로 한 턱 쏜다. 떡 50개와 계란 두 개다. 녹색 바탕에 흰색 얼룩이 있는 접시에 비닐을 싸서 그 위에 떡볶이가 나온다. 오늘은 양이 많아 두 접시다. 친구랑 나는 공평하게 나눠진 접시를 받아 떡을 하나씩 먹는다. 쫀득쫀득한 밀떡에 적당히 매콤하고 달달한 빨간 떡볶이 소스가 스며들어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떡볶..
새벽 공기 이미지, 소리 말고도 기억을 확 불러일으키는 것이 있다. 바로 냄새다. 저 멀리서 은은하게 풍기다가 어느새 다가와 내 속에 쏙 들어온다. 냄새는 아직까지 인위적으로 만들기 어려운 것 중에 하나다. 다른 거에 비해 자연적이고 원시적으로 많이 남아 있다. 음식, 꽃, 향수 같이 여러 냄새가 있지만 내 기억을 잡아끄는 건 공기 냄새다. 동이 트기 전 어스름한 하늘 밑 뿌연 안개 속에 날 깨우는 냄새가 있다. 새파랗고 차가우며 쓸쓸한 냄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르바이트 가게에 가면서 맡던 그 냄새다. 급하게 씻어 덜 마른 머리에 차가운 새벽 공기가 접촉하면서 풍기던 하얀 물 냄새는 항상 피곤한 나는 깨워줬었다. 이 새벽 공기는 스무살 내가 일년 내내 아침마다 맡았던 거다. 갑자기 어려워진 집안 형편에 끝이 보..